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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폭동이라는 이름 뒤의 진실

by 연기자 2026. 1. 13.

마을이 불타는 사진

제주 4·3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다.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은 지금까지도 침묵과 낙인,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4·3은 ‘폭동’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었고, 국가가 행사한 폭력의 책임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했다. 사건 직후 정부는 남한 단독 선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가 수립 과정에서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제주에서 벌어진 저항과 요구를 좌익 폭동으로 몰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일 국가 건설을 바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이념의 이름으로 왜곡되었고,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력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토벌 작전은 제주 주민 전체를 ‘잠재적 적’으로 규정했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 권력은 냉전과 반공 체제 속에서 정당성과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을 희생시켰다. 제주 4·3은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이 무너졌을 때 국가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다.

1. 폭동으로 규정된 사건, 지워진 주민의 목소리

제주 4·3사건을 오랫동안 따라다닌 공식적 규정은 ‘폭동’이었다. 이 단어는 사건의 성격을 단순화했고,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폭동이라는 규정이 붙는 순간,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죽음은 ‘진압 과정의 불가피한 희생’으로 처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제주 사회의 분위기는 무장 봉기나 체제 전복의 열망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제주 주민 다수는 남한 단독 선거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통일된 국가를 원하는 요구는 해방 직후 한국 사회 전반에 존재하던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이 요구는 곧바로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좌익 봉기’로 치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 개개인의 정치적 생각과 선택은 사라졌고, 제주는 하나의 위험 지역, 통제되어야 할 공간으로 재구성되었다.

폭동이라는 규정은 사건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사건을 덮는 언어였다. 그 언어 아래에서 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는지, 왜 갈등이 증폭되었는지는 묻히고 말았다.

2. 진압에서 토벌로, 국가 폭력이 확대되는 과정

문제는 충돌 그 자체보다 이후의 대응에 있었다. 초기의 무력 충돌 이후, 국가 권력은 상황을 관리하는 대신 ‘적을 제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진압은 토벌로 바뀌었다.

토벌 작전의 핵심은 명확했다. 누가 무장 세력인지 구분하기보다, 지역 전체를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었다. 제주 주민은 개별 시민이 아니라 잠재적 공산주의자로 간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과 비민간인의 구분은 무너졌다. 마을 단위의 초토화, 무차별 검거, 처형과 학살이 반복되었다. 폭력은 점점 일상화되었고, 생존 자체가 죄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가가 행사한 폭력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섰다. 그 폭력은 공포를 통해 지역을 장악하고, 반공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내부적으로 각인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 권력이 국민을 위협하는 존재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3. 냉전과 반공 체제가 만든 비극의 구조

제주 4·3사건은 지역적 특수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사건은 해방 이후 한반도를 뒤덮은 냉전 질서와 반공 체제 형성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시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가 수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남한 단독 선거는 그 핵심 수단이었고, 이를 위협하는 모든 움직임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 역할은 ‘체제 수호’라는 목표에 종속되었다. 누가 국민인지, 누가 적인지의 기준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편되었다.

제주 주민이 겪은 비극은 특정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이념을 앞세워 사람을 도구화했을 때 벌어지는 구조적 폭력이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유족들은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받았고, 사건을 말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처벌이 되었다. 4·3은 과거형이 아니라, 긴 현재진행형의 고통이었다.

결론

제주 4·3사건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국민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정당성과 체제 안정을 위해 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했고, 그 규정은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정당화하는 언어가 되었다. 통일을 바라는 주민의 요구는 이념의 이름으로 지워졌고, 제주 전체는 적으로 취급되었다.

이 비극이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념과 체제가 사람보다 앞설 수 있는가.

제주 4·3은 그 질문에 대한 한국 현대사의 가장 뼈아픈 경고다. 이념에 앞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 국가는 국민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