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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폭동이라는 이름 뒤의 진실 제주 4·3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다.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은 지금까지도 침묵과 낙인,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4·3은 ‘폭동’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었고, 국가가 행사한 폭력의 책임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했다. 사건 직후 정부는 남한 단독 선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가 수립 과정에서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제주에서 벌어진 저항과 요구를 좌익 폭동으로 몰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일 국가 건설을 바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이념의 이름으로 왜곡되었고,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력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토벌 작전은 제주 주민 전체를 ‘잠재적 적’으로 규정했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 권력은 냉전과 반공 체제 속에서 정당성과 .. 2026. 1. 13.
해방 후 친일 청산은 왜 실패했는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때 흔히 “의지가 없었다”는 말로 정리된다. 하지만 그 설명만으로는 왜 제도까지 만들어졌던 청산 작업이 좌절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미군정은 해방 직후 행정 공백을 빠르게 메우기 위해 일제강점기 동안 행정 경험을 쌓았던 친일 관료와 경찰을 다시 활용했다. 이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효율이 국민의 정서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만든다. 그런데 친일 청산을 심의하고 집행해야 할 권력의 자리에, 과거 친일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 다시 올라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과는 명확했다. 그들은 자신을 처벌할 수 있는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했고, 그 중심에 반민.. 2026.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