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때 흔히 “의지가 없었다”는 말로 정리된다. 하지만 그 설명만으로는 왜 제도까지 만들어졌던 청산 작업이 좌절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미군정은 해방 직후 행정 공백을 빠르게 메우기 위해 일제강점기 동안 행정 경험을 쌓았던 친일 관료와 경찰을 다시 활용했다. 이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효율이 국민의 정서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만든다. 그런데 친일 청산을 심의하고 집행해야 할 권력의 자리에, 과거 친일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 다시 올라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과는 명확했다. 그들은 자신을 처벌할 수 있는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했고, 그 중심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와해가 있었다.
1. 효율을 택한 미군정, 정서를 잃다
해방 직후 한반도는 국가 운영의 거의 모든 영역이 멈춰 선 상태였다. 행정, 치안, 재정, 사법 어느 하나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미군정은 빠른 안정과 질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이미 행정 시스템을 알고 있는 인물을 다시 쓰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와 경찰 조직에서 일했던 관료들은 문서 처리, 행정 절차, 치안 유지에 능숙했다. 미군정의 입장에서 보면, 새 인력을 교육하는 것보다 이들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이 선택은 단기간에 행정 공백을 줄이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효율은 치명적인 대가를 동반했다. 해방을 맞은 국민 다수에게 친일 관료와 경찰은 ‘행정 전문가’가 아니라 식민 지배의 얼굴이었다.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는 장면은 해방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미군정이 이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효율은 통치를 쉽게 만들었지만,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이 균열은 이후 친일 청산 실패의 출발점이 되었다.
2. 민주주의의 역설: 법을 만드는 사람이 처벌 대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국민의 대표가 만든다. 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에서도 이 원칙은 형식적으로는 유지되었다. 친일 청산 역시 법률에 따라 진행되는 제도적 과정이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진전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역설이 숨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행정 경험을 이유로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선 인물들 중 상당수가 국회의원으로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즉, 친일 청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이 친일 청산 법안을 다루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법과 제도는 중립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웠다. 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묻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권력을 위협하는 일’로 인식되었다. 자연스럽게 반민특위의 활동은 노골적인 방해와 압박에 직면했다.
수사 인력은 축소되었고, 체포 권한은 제한되었으며,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반민특위를 “국론을 분열시키는 조직”으로 몰아갔다.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보호의 논리가 작동한 것이다.
3. 반민특위 와해는 우연이 아니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상징적인 조직이자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친일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존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그 균열은 곧 조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경찰은 수사에 비협조적이었고, 정치권은 예산과 권한을 문제 삼았다. 결국 반민특위는 물리적 탄압과 제도적 방해 속에서 와해된다. 이 과정은 감정의 충돌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충돌이었다.
친일 청산의 실패를 국민의 무관심이나 시대적 한계로만 돌리기에는, 그 과정은 지나치게 체계적이었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는 제도를 제거하는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친일 청산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문제였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권력이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가 결과를 결정했다.
결론
미군정의 친일 관료와 경찰 활용은 단기적으로는 국가 재건에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해방이라는 역사적 순간이 요구한 정의와 단절의 요구를 외면했다.
민주주의는 형식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 법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의 실패는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권력 구조 선택의 결과였다.
반민특위의 와해는 과거를 정리하지 못한 대가가 어떤 방식으로 현재에 남는지를 보여준다. 그 실패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